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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서핑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을 가끔 마주칠 수 있습니다.


 -○○○ 원두는 카페인이 적다.

 -로부스타 원두는 (아라비카보다) 카페인이 많다.

 -로부스타를 사용하는 인스턴트 커피에는 카페인이 많다.

 -에스프레소는 원두와 물이 접촉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카페인이 적다.

 -더치 커피는 원두를 뜨거운 물이 아닌 찬물로 추출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적다.


 카페인의 (과다한) 섭취가 건강에 별로 좋지 않고 따라서 카페인이 적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 몸에 좋다(=그나마 해를 덜 끼친다)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미리 찬물을 끼얹고 가자면, 특정한 원두가, 또는 특정한 추출법으로 추출한 커피가 카페인이 많거나 적다는 주장에는 별 근거가 없거나 틀린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커피를 어지간히 마시는 사람도 (커피만으로는) '건강을 해칠 만큼'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카페인의 성인 일일섭취기준을 400mg 이하로 잡고 있으며, 임산부는 300mg 이하, 만19세 미만 청소년은 체중 1kg당 카페인 2.5mg 이하로 잡고 있습니다.<출처> 식약처(당시 식약청)의 자료를 스마트컨수머에서 인용한 것을 다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임산부가 아닌 성인이라면 하루에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9.41봉, 2샷이 들어가는 스타벅스 톨사이즈 아메리카노 3.5잔을 마셔야 이 400mg을 채우게 됩니다. 임산부라면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7.05봉, 스타벅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2.6잔을 마셔야 300mg을 채우게 됩니다. 체중이 60kg인 청소년은 맥심 커피믹스 3.5봉, 스타벅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1.3잔, 체중이 45kg인 청소년은 맥심 커피믹스 2.65봉, 스타벅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0.99잔을 마셔야 체중별 카페인 일일섭취량을 채우게 되지요. 카페인 걱정하시던 분들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마실 수 있네?'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각주:1] <출처-맥심(1)>, <출처-맥심(2)>, <출처-스타벅스 등>


 ※2015년 4월 27일 수정 : 인스턴트 커피의 카페인 함량을 조사한 스마트컨수머 쪽 자료<출처>를 발견했습니다. 예전에 사용한 충남대학교와 한국화학연구원의 자료<출처>보다 좀 더 많은 양의 카페인이 인스턴트 커피에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위 문단의 서술을 수정하였습니다. (수정 전의 서술은 임산부가 아닌 성인이 하루에 맥심 커피믹스 11.98봉, 임산부는 하루에 맥심 커피믹스 8.98봉, 체중 60kg인 청소년은 4.5봉, 45kg은 3.4봉을 마셔야 일일섭취기준을 채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정 후 하루에 마실 수 있는 맥심의 잔 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많습니다. (두 자료의 값이 서로 다르다면 평균값을 취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방어적으로 가는 게 좋을 듯하여 카페인이 많은 쪽의 값을 취하였습니다)




 잠시 위키백과 '카페인' 항목에 올라온 자료를 뒤적여 커피 한 잔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양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보통 농도의 커피는 8oz(237mL), 에스프레소는 1샷(1.5-2oz)을 기준으로 하여 1회 제공량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몇mg인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A <출처>

B <출처>

C <출처>

Espresso

n/a

100mg

77mg

Brewed

135mg

108mg

91-154mg

Drip

n/a

145mg

131-200mg

Instant

95mg

57mg

74-114mg


 뒤죽박죽이죠. 인스턴트 커피의 경우 최솟값이 57mg, 최댓값이 114mg로 2배나 차이가 납니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경우 1.3배, 드립 커피의 경우에도 1.5배(자료 C의 최솟값-최댓값)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렇게 차이가 심한 자료를 믿을 수 있는 걸까요?


 자료별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변인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페인 함량이 동일한 원두를 사용하였는가?[각주:2]

 -1회 제공량 당 투입하는 원두의 양은 일정한가? 인스턴트 커피라면, 같은 회사의 제품을 같은 양만큼 투입하였는가?

 -1회 제공량을 용량을 기준으로 잡았다면, 일정한 양의 원두를 투입해서 일정한 양의 커피를 추출하였는가?[각주:3]


 에스프레소의 경우는 투입하는 원두의 양과 추출하는 커피의 양이 상당히 정형화된 편입니다. 상업용 포타필터의 크기가 일정하고, 샷잔의 크기 또한 일정한 편이니까요. 따라서 똑같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는데 카페인의 함량이 크게 다르다면, 그 원인은 원두에 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입니다. 스마트컨수머의 자료에 의하면 (조사 대상 중) 톨사이즈 아메리카노에 2샷을 넣는 6개 회사[각주:4] 중 가장 카페인이 많은 파스쿠찌는 196mg, 가장 카페인이 적은 스타벅스는 114mg로 1.7배나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원두[각주:5]별로 카페인 함량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을 바탕으로 '◯◯◯ 원두는 카페인이 적다'와 같은 멘트가 모두 옳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멘트를 날리는 사람이 실제로 카페인 함량을 측정해서 제시한 경우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추출법마다 달라지는 카페인의 함량을 비교하는 실험을 설계한다면, 카페인 함량이 동일한 원두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두를 많이 투입하면 카페인도 많이 추출됩니다. 스마트컨수머의 자료에 의하면, 2샷이 들어가는 아메리카노와 1샷이 들어가는 캐러멜 마키아토보다 카페인 함량이 파스쿠찌와 스타벅스는 약 1.7배(각각 196/116mg, 114/66mg), 카페베네, 커피빈, 투썸플레이스는 약 2배(각각 168/84mg, 186/83mg, 159/80mg) 많습니다. 배수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더블샷을 끝까지(약 60mL) 추출하느냐, 리스트레토로 추출하고(약 45mL) 끊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짐작되는데, 설마 2샷 넣는다 치고 떼어먹는 건 아닐 테니까 만약 이 추론이 맞다면 (사실상) 같은 양의 원두를 넣고 추출할 때 추출량을 25% 줄인다고 해도 추출된 카페인의 총량은 15%만 줄어들고, 따라서 추출한 커피의 카페인 농도는 약 17.6% 올라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로부스타에는 카페인이 많다'+'인스턴트 커피는 로부스타로 만든다'→'따라서 인스턴트 커피에는 카페인이 많다'는 추론은 언뜻 보기에 합리적이지만, 실제로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1) HPLC를 이용한 카페인 함량 조사<출처>에 의하면 맥심 커피믹스 1봉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33.4(±3.1)mg, 프렌치카페 커피믹스 1봉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40.2(±2.1)mg이며, 상품명을 알 수 없는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 2g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50.2(±2.1)mg이라고 합니다.


 2) 스마트컨수머의 카페인 함량 조사<출처>에 의하면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봉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42.5mg,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1봉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43.6mg이라고 합니다.


 프림과 설탕이 들어간 믹스커피 혹은 둘둘둘 커피를 마시는 분은 카페인보다는 칼로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인스턴트 커피의 카페인 함량은 낮은 편입니다. (프리미엄 스틱커피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실측치가 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로부스타에 카페인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인스턴트 커피를 끊고 원두커피로 갈아탔는데, 그 사람이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바디감을 강화하고 크레마를 선명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로부스타를 섞어넣은 에스프레소 블렌드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로 만든 것이라면…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 때보다 훨씬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게 될 것입니다. (2샷이 들어가는 스타벅스의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에는 맥심 커피믹스 2.7봉지 분량의 카페인이, 파스쿠찌의 아메리카노에는 맥심 커피믹스 4.6봉지 분량의 카페인이 들어 있습니다)


 인스턴트 커피의 카페인 함량이 생각보다 낮은 이유는 인스턴트 커피가 적은 양의 원두로 많은 양의 커피를 추출하여 만들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같은 양의 원두를 투입해 적은 양을 추출한 리스트레토 샷이 일반적인 샷보다 진한, 즉 카페인 농도가 높은 커피를 만든다면 역으로 같은 양의 원두를 투입해 많은 양을 추출할 때는 카페인 농도가 낮은 커피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프림과 설탕을 넣어 마실 용도로 나오는 인스턴트 커피를 '블랙 커피'로 마실 때 맛대가리가 없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겁니다.




 커피는 아니고 녹차로 실험한 결과입니다만, 추출 시간의 2배 정도 차이는 카페인 함량에 큰 변화를 준 것 같지 않습니다. 100℃의 물에 5분 추출했을 때와 10분 추출했을 때 카페인의 차이는 2.2~7.5%정도에 불과했으니까요. 추출 온도가 100℃와 80℃로 차이가 났을 때에도 (추출 시간이 같다면) 그 차이는 2.3~10.9%로 생각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추출 온도가 60℃로 낮아지면 카페인 함량은 100℃에서 추출했을 때의 53%~56% 수준으로 줄어들어,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일한 녹차를 투입하고 동일한 추출 시간을 지켰을 때의 결과입니다. 뜨거운 물로 추출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원두를 들이붓고 훨씬 오랜 시간(4분 대 8시간으로 비교해도 120배 차이가 납니다) 추출하는 더치 커피의 특성을 감안하면 단지 찬물로 추출한다는 이유만으로 카페인이 적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죠.


 ※2015년 4월 27일 추가 : 위드오에서 판매하는 더치 커피 50mL에는 100mg, 핸디엄에서 판매하는 RTD 제품 '더치 커피 워터' 1병(400mL)에는 약 150mg[각주:6]의 카페인이 들어 있습니다. 위드오의 더치 커피는 50mL, 핸디엄의 더치 커피 워터는 1/2병~1병을 1회 제공량으로 볼 수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더치 커피 1회 제공량에도 에스프레소 1~1.5샷 정도의 카페인은 들어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유감스럽게도 카페인 함량을 측정/비교하는 실험은 개인이 진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HPLC(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고속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나 Spectrophotometer(분광 광도계) 같은 기기가 있어야 하고 실험을 진행하고 결과를 분석할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시중에 나와 있는 이른바 '카페인 측정기'의 성능은 이 음료에 카페인이 있다/없다, 카페인 농도가 진하다/중간이다/묽다 정도나 보여주는 게 고작입니다. 함량을 제대로 측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능이죠.


 어떤 원두에 카페인이 많다/적다, 어떤 추출법으로 추출한 커피에 카페인이 많다/적다는 주장이 제대로 입증되거나 반박되지 않은 채 웹 이곳저곳에 떠돌아다니며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는 바로 카페인 함량 실측의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한번 재 보면 그 말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바로 판정할 수 있는데, 그 재 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글을 끝맺고, 또 그런 글을 올리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 글을 통해 커피의 카페인 함량이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임을 밝히고 몇몇 오해와 편견을 걷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고를 정리해 포스팅합니다.


 식약처가 '임산부는 마시지 말 것을 권고함'도 아니고 '임산부는 하루 300mg 이하로 섭취할 것을 권고함'이라고 밝힌 카페인이고, 임산부가 아닌 성인이라면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9.41봉을 마셔야 일일섭취량을 채우는 카페인입니다. 하루에 커피 한두 잔을 마시고 지금까지 큰 탈이 없었다면[각주:7] 앞으로도 별 탈은 없겠지요. 적당한 커피는 건강을 해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즐거운 커피 생활 하시길!




 각주


  1. 물론 이것은 권고사항일 뿐, 카페인의 섭취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불상사(만약 생긴다면)까지 식약처가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카페인은 미국 FDA에서 안전한 물질로 분류하고 있으나 과잉섭취 시에는 신경과민, 불면증 등을 일으킬 수 있어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일일섭취기준을 둔 것입니다. [본문으로]
  2. 만약 원두 품종별로 카페인 함량이 다른 게 맞다면 말이지요. [본문으로]
  3. 예를 들어, 1회 제공량을 8oz로 잡았을 때 누구는 원두 15g로 6oz의 커피를 추출하고 누구는 원두 15g으로 8oz의 커피를 추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요. 이 때 6oz의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 함량에 1.333…(=8/6)을 곱해 1회 제공량 당 카페인 함량을 구한다면, 처음부터 15g으로 8oz를 추출한 커피에 비해 1회 제공량 당 카페인 함량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4. 파스쿠찌, 카페베네, 커피빈,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스타벅스. (카페인 함량이 많은 회사부터) [본문으로]
  5. 아라비카/로부스타의 차이, 티피카/부르봉/카투아이…의 차이, 건식/습식/반습식…의 차이, 그 외 산지 별 차이와 같은 요인을 모두 고려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6. 이르가체페 1병에는 157mg, 케냐 1병에는 155mg. [본문으로]
  7. 스마트컨수머의 조사 대상 중 가장 카페인 함량이 높았던 파스쿠찌의 2샷 들어간 아메리카노의 카페인 함량도 198mg로, 성인은 하루에 2잔을 마셔야 일일섭취량을 채웁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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