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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 (Guatemala Special Selection) 200g

 구입일 : 2016. 5. 16.

 구입처 : 카페 드 벤 (딴지마켓을 통하여 구입)


 저의 여든세 번째 커피는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이었습니다.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와 함께 주문한 원두입니다. 과테말라로 할까 인도로 할까 좀 고민이 되었는데, 과테말라 쪽이 우선 구매 대상이어서 과테말라로 골랐습니다(거래한 적 없는 로스터리에 첫 주문을 넣는 상황에서, 인도보다는 과테말라 쪽이 좀 더 무난한 선택이기도 했고요).



<참고 : 이 블로그의 별점과 그래프>


 비교적 가벼운 바디, 다크초콜릿(촉감/맛/향), 감귤·레몬·자몽(산미), 흑설탕 같은 달달함(맛), 계피(맛/향), 헤이즐넛·땅콩·아몬드의 기름진 고소함(맛/향), 삼나무(향), 정향(향), 민트·장뇌(향), 볶은 보리·귀리(향), 희미한 풀냄새와 생담배(향)


 존댓말을 써 가며 딴지일보 논설우원 문체를 구현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딴지일보의 정신—상식적인 이야기에 지식인들이 쓸 만한 표현을 버무림으로써 유식한 노가리를 창출하고, 가끔씩 욕설을 던지거나 저속한 비유를 끼얹음으로써 현학적인 표현이 지닌 권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지식인의 고담준론이나 논설우원의 노가리나 알고 보면 똔똔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주류 지성의 아성에 도전하는, 실로 딴지스럽기 그지없는—을 모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딴지정신을 따라가다 보니 저 자신에게 칼끝이 향하고 있었거든요. 알고 보니 제가 주류 지성이었…다는 건 아니고, 알고 보니 겸손한 말투로 고담준론을 재재거리는 놈이 지금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놈이더라는, 범인이 이 안에 있는데 그게 나였어, 뭐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반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쓰바.


 각설하고, 또 다시 과테말라입니다. 엘 카르멘 이후 여덟 달 만입니다. 이 원두를 주문하면서 저는 산미가 있고 달달하며 (Medium+로 볶았다는)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보다 좀 묵직한 커피를 기대했었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라 우에르타의 붕어빵이 왔습니다. 나라도 다르고, 로스팅 포인트도 달랐는데, 향미의 성향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쓴맛에 청량감이 있고, 다크초콜릿을 닮은 특성이 좋으며, 민트류의 존재감이 뚜렷하고, 후추·삼나무의 얼큰함이 있고, 산미가 적다는 점에서(또한, 커피가 적당한 온도를 지나 조금 미지근해지면 갑자기 산미가 올라오고, 아이스 커피의 온도에서 더 잘 느껴진다는 점에서) 카페 드 벤의 이번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은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를 많이 닮았습니다. 테이스팅을 처음 할 때 샘플이 바뀐 줄 알고 몇 번 다시 맛을 볼 정도로요.


 물론 차이는 존재합니다. 라 우에르타보다 쓴맛이 좀 적고, 산미가 조금 강하고, 좀 더 달달하고 좀 더 고소합니다. 라 우에르타의 산미에는 과일의 이미지가 없었지만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의 산미는 감귤·레몬·자몽을 닮았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견과류의 이미지가 좀 더 또렷하고(헤이즐넛·땅콩·아몬드 같은 품목을 지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단맛도 좀 더 또렷합니다. 트러플 오일이나 루이보스 같은 난해한 노트도 빠졌습니다.


 노트의 다양성과 독특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 쪽이 좀 더 우월했습니다. 화이트와인을 닮은 가볍고 새콤한 풀냄새, 트러플 오일, 루이보스는 커피를 리뷰하며 처음 논하게 된 특성입니다. 향신료와 허브의 노트들도 좀 더 다채로웠습니다. 만약 독특함을 중시하는 리뷰어라면, 라 우에르타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쌉쌀함과 달달함이 조화를 이루고, 고소함과 달달함이 다크초콜릿의 특성을 지지하며, 과일의 이미지가 있는 산미가 좀 더 균형감 있고 구석구석 빈틈이 없는 큰 그림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 무난함과 조화로움을 높이 살 만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원두는 라 우에르타보다 훨씬 쌉니다. 라 우에르타는 200g에 18,000원,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은 200g에 13,000원입니다. 5월의 원두였던 라 우에르타가 지나갔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이 있으니까요. (지금은 산 안토니오 차기테 San Antonio Chaguite 농장의 원두가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농장이 바뀌기 전까지는 맛이 유지될 겁니다)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의 균형감은 뜨거운 물을 사용한 추출법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 중에서도 수율이 높은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하였을 때 특히 많은 노트가 감지되었고,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쌉쌀한 맛이 있고 나중에 산미도 조금 올라와서 좋았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를 대량생산해 식히면 쌉쌀하고 상큼한 커피가 됩니다. 보통 아이스(iced)로 만들면 산미가 덜 느껴지는데, 카페 드 벤의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와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은 낮은 온도에서 산미가 더 두드러집니다. 열대과일을 닮은 산미와 청량감 있는 쌉쌀함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시원하게 내린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을 한번 맛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아이스 드립도 좋고 콜드 브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청량감 있는 쌉쌀함, 달달함, 고소함의 조화가 인상적인, 다크초콜릿 같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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