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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오리는 의정부의 로스터리 카페입니다. 행복로와 부대찌개 거리로 통하는 오거리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행복로의 수많은 카페를 지나치며 이곳까지 찾아오려면 나름대로의 결심(?)이 필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카페 오리의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는 깔끔한 강배전 커피입니다. 기분 좋은 쌉쌀함이 있고, 강배전에서 오는 삼나무와 생담배의 노트도 있습니다. 식으면 약간의 단맛이 올라옵니다. 로부스타 특유의 냄새는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중배전 아메리카노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짭짤구릿한 멸치액젓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표준적인 강배전 원두를 표준적으로 추출한, 올드스쿨하고 반가운 맛입니다. (저는 편의상 '올드스쿨 에스프레소 블렌드' 같다는 말을 이러한 특성을 지닌 강배전 커피를 설명할 때 씁니다)




 이곳에는 에스프레소 그라인더가 두 대 놓여 있습니다. 한 대는 보통 농도의 에스프레소 샷을 뽑기 위한 그라인더, 다른 한 대는 연한 에스프레소 샷을 뽑기 위한 그라인더라고 합니다. 두 대의 그라인더에 투입된 원두의 종류는 동일하지만 세팅된 굵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주문할 때 "연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굵게 세팅한 그라인더에서 굵게 간 원두를 받아 커피를 제조합니다. 굵게 분쇄한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농도와 수율이 함께 내려갈 테니, 부드럽고 연한 커피가 완성되겠지요.


 사장님께 넌지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나이 드신 분들은 그런(젊은이들이 마시는 보통 농도의) 커피는 독하다고 싫어하세요."


 인상적인 답변이었습니다. 상당수의 오너 바리스타들은 커피 음료를 제조할 때 농도를 충분히 확보하려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각주:1] 연한 커피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거기에 부응하기보다는 연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커피의 맛'에 눈뜨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는 수요를 향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카페 오리에는 중장년 고객이 많이 찾아옵니다. 모던한 카페에 중장년 고객이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은, 잃어버렸던 아메리카노를—잃어버렸던 커피를 되찾은 듯 자연스럽고 신선합니다.[각주:2]




 카페 오리의 연한 아메리카노는 적당히 쌉쌀했습니다. 너무 연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강배전 특유의 기분 좋은 쓴맛이 연한 아메리카노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연한 카페 라테는 정말 부드러웠습니다. (샷추가를 하지 않는 이상, 이곳의 카페 라테에는 1샷이 들어갑니다) 우유와 에스프레소 샷이 어울려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났고, 쓴맛이 거의 없었습니다. 달지 않은 카페 라테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메뉴고, 이미 커피를 많이 마신 상태에서도 카페만 들어서면 또 커피가 마시고 싶은 가엾은 중생들에게도 권할 만한 메뉴입니다. 그만큼 부드럽고, 연한 커피로서 부족함이 없는 커피입니다. (조금 진한 카페 라테를 원한다면, '연하게' 옵션을 넣지 않은 카페 라테를 주문하면 됩니다. 좀 더 진하게 마시고 싶다면, 샷추가를 하면 되고요)


 카페 오리의 컨디먼트 바에는 레몬 물과 시럽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세면대가 화장실 바깥에 있어, 손을 씻기 편리합니다. 실내에 흡연실이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카페여서, 담배를 피우면서 노트북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도 가끔 찾아옵니다. 환기 시설이 잘 되어 있는지 객실로 담배 냄새가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싱글 오리진 드립 커피도 판매하고, 원두도 판매합니다.


 빈자리가 조금씩은 있어서, 언제 찾아가더라도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입니다. 사장님이 내려준 에스프레소를 마시려면 운이 좀 필요하지만요(미안해요 알바생. 그래도 에스프레소는 사장님이 뽑아주신 게 더 맛있었어). 주말 오후에 의정부에서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카페입니다. 물론 평일에도 일부러 찾아갈 만한 카페입니다.




 각주


  1.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서 높은 농도를 고수하는 바리스타도 있지만, 빅 사이즈(big size)를 내세우는 초저가 커피 체인점과 차별화하기 위해 농도를 높게 잡는 바리스타도 있습니다. 고급 원두(대개의 경우 탄내가 없고 쓴맛이 적으며 향미의 결이 섬세한)의 장점을 드러내려면 농도를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연한 아메리카노는 중장년 고객에게는 가장 좋은 커피 메뉴라 할 수 있습니다(취향에 따라 시럽을 넣을 수도 있겠죠). 우유는 소화가 잘 안 되고, 휘핑크림은 건강을 생각하면 피하는 것이 좋으니, 우유나 크림이 들어가는 배리에이션 메뉴는 꺼려지거든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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