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페베네는 "커피가 맛없기로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커피 체인점입니다. 이런 식의 악명은 악명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커피 맛을 개선하는 식으로 대응하더라도, 커피 마시러 오는 손님이 이미 줄어든 상태라[각주:1] 개선된 맛을 확인받을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상식적이고 올바른 대응이 소용없어집니다. '읽어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명성을 유지하는 명작처럼, '마셔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악명이 재생산됩니다. 이쯤 되면 수습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신메뉴인 콜드 브루를 맛보러 상계백병원 맞은편 스타벅스에 갔다가 앉을 자리가 없어 돌아나왔습니다. 노원 롯데백화점 맞은편까지 올라와 스타벅스와 할리스를 둘러봤지만 거기에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문화의거리 쪽 카페도 앉을 자리 없이 붐빌 게 뻔했고, 창동 쪽 카페로 가면 자리는 있겠지만 다리가 아파서 거기까지 걸어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스타벅스와 할리스 사이에 서 있었고, 눈 앞에는 카페베네 노원교보점의 문이 있었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빈 자리가 조금 보였습니다. 저는 피치 못해 피치항공을 타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콜드 브루 크러쉬와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를 주문했습니다. 의외로 무난했습니다. 콜드 브루 크러쉬는 조금 과추출된 콜드 브루 커피의 맛이 났지만 바빈스키 아메리카노처럼 비릿하거나 쇠맛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얼음이 녹기 전, 원액에 가까운 커피는 꽤 독한 편이었지만 전반적인 인상은 나쁘지 않았고 결점으로 취급될 향미 노트도 딱히 없었습니다. 원두의 품질은 괜찮은 편인 것 같았습니다. 콜드 브루가 이러하다면, 에스프레소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는 다른 체인점의 요거트 음료에 비해 구연산 맛이 좀 더 강하게 났습니다. 카페베네의 레시피가 요거트에 파우더를 좀 더 넣는 쪽인 것 같아요)


 카페베네 노원교보점에서는 음료 한 잔에 도장 하나씩을 찍어주는, 이 매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스탬프 쿠폰을 줍니다. 스탬프 6개를 채우면 아메리카노 한 잔, 12개를 채우면 커피류 음료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노원교보점이 직영매장임을 암시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음, 직영점이라면 믿을 만하겠는걸?[각주:2]


 며칠 후 이곳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했습니다.



 의외로 굉장히 멀쩡했습니다. 이디야의 2,500원짜리 에스프레소는 좀 복불복이었는데, 카페베네 직영점의 3,500원짜리 에스프레소는 그보다는 한 단계 높은 품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중배전[각주:3] 원두를 적정 추출한 에스프레소답게 쓴맛이 강하지 않았고, 과추출된 커피 특유의 결점 노트가 없었습니다. 적당한 산미와 미약한 단맛(특히, 뒷맛에서 많이 느껴졌습니다)이 있었고, 짭짤구릿한 향미가 포인트를 잡아 주고 있었습니다(인도네시아 원두나 건식 가공한 에티오피아 시다모가 블렌드에 들어가서 이러한 특성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진하고 걸쭉하고 쓴[각주:4] 커피에서 짠맛과 멸치액젓 냄새까지 나면, 된장과 비지를 넣지 않고 바특하게 끓인 청국장 정도의 난이도가 됩니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구수하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역겹겠지요. 이 에스프레소도 그와 같습니다. 에스프레소를 곧잘 마시지만 짭짤구릿한 특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께는 부담스러울 수 있고, 평소에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는 분께는 식품이 아닌 생화학병기로 느껴질 겁니다. 으악, 이거 뭐야.


 하지만 이러한 에스프레소로 카페 라테를 만들면 제법 괜찮은 커피가 됩니다. 짭짤구릿한 특성은 우유와 만나면 상승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방문해서 이번에는 카페 라테와 고구마 라테를 주문했습니다.



 예상대로 쓴맛이 적고 고소한 카페 라테가 나왔습니다. 게다가 벨벳밀크… 제가 지금까지 커피 체인점을 돌아다니면서 본 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스티밍이었습니다. 카페베네 노원교보점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카페 라테를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카페베네의 악명을 잊게 만들 만큼 맛이 좋은 커피입니다. (고구마 라테는 좀 달고 진득한 편이었습니다. 제 입에는 할리스의 고구마 라테가 더 맞았습니다)



 위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카페베네 노원교보점에서는 음료 한 잔에 도장 하나씩을 찍어주는 스탬프 쿠폰을 줍니다. 이 쿠폰은 이 매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매장에는 흡연실이 딸려 있습니다. 흡연실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법령 개정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흡연실 안에는 의자가 없고, 테이블은 재떨이를 올려놓는 테이블 딱 하나만 있습니다. 흡연실 문 가까운 곳에서는 담배 냄새가 조금 나지만, 천장이 높고 환기가 잘 되는 매장이라 그런지 문이 여닫힐 때만 냄새가 좀 나고 이내 사라집니다. (집에 와서 옷을 점검해 봐도 담배 냄새가 배어 있지 않았습니다)


 테이블과 의자는 어두운 빛깔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의자는 조금 딱딱한 편입니다. 내부 조명은 적당히 조도가 낮은 직접광입니다(책을 읽기에는 조금 어둡습니다). 창가에는 바(혹은 '다찌') 형태의 길고 높은 탁자가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는 이 자리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안쪽에 벽을 보고 놓여져 있는 테이블과 2인용의 긴 의자가 한 곳 세팅되어 있습니다. 나란히 앉는 것을 좋아하는 커플을 위해 준비한 자리로 보입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더 으슥하고 아늑한(…?) 자리가 있는데, 벽쪽에 있는 긴 의자에는 등받이가 없어 뒤로 기대어 앉을 수는 없습니다. 조모임이나 스터디를 하려는 사람에게 적당할 것 같습니다.


 카페베네 노원교보점은, 의외로 멀쩡한 카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직영점이고, 카페베네는 가맹점 관리 똑바로 못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커피 체인점인 만큼 카페베네의 모든 지점에서 이만큼 훌륭한 품질의 커피를 맛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성심성의껏 가게를 운영하는 카페베네 가맹점주에게는 이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겁니다) QC가 잘 되는 가맹점을 시행착오 없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직영점의 수는 가맹점에 비해 너무 적으니까요) 당분간은 직영점 위주로 카페베네를 탐방할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가맹점도 찾아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각주


  1. 커피가 맛없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아예 카페베네에 가지 않거나, 카페베네에 가더라도 커피가 아닌 다른 메뉴를 주문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문으로]
  2. 카페베네가 무리하게 가맹점을 늘린 결과 본사의 관리감독이 허술해졌고, 그 때문에 일부 가맹점의 커피 맛이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본사가 운영하는 직영점이라면, 적어도 관리 문제로부터는 자유롭겠지요. [본문으로]
  3. 카페베네의 아메리카노 메뉴 이름은 "미디엄 로스팅 아메리카노"입니다. 다른 커피 체인점에 비해 약하게 볶은 원두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4. 제가 에스프레소를 평가하며 '쓴맛이 적다'고 하는 것은 에스프레소치고는 쓴맛이 적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에스프레소치고는 쓴맛이 적은 커피라 해도, 일단은 에스프레소인 이상, 쓸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