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원두 : 엘살바도르 COE 2013 4위 Peña Redonda (El Salvador COE 2013 #4 Peña Redonda) 100g

 구입일 : 2014. 9. 15.

 구입처 : 로스팅하우스


 저의 마흔한 번째 원두는 엘살바도르 COE 2013 4위 Peña Redonda였습니다.


 이 원두의 COE Score는 88.80점입니다.



 Peña Redonda를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쓰면 '페냐 레돈다'가 됩니다. Peña는 돌, 바위, 반석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베드로', '피터'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며 지명이나 사람 이름에 종종 쓰입니다.


 COE 4위, 88점 후반대의 고득점 원두. 커피를 추출하기 전부터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든 원두였습니다. 저번에 입수한 온두라스 Guacamaya가 12위에 87.63점이었던지라, 그보다 순위도 앞이고 점수도 높은 원두는 무슨 맛을 내어줄 지 궁금했거든요.


 첫 모금은 다크초콜릿 같았습니다. 촉감이 진득했고, 맛과 향이 쌉쌀했습니다.


 적당한 온도에 진입하니 강한 산미가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감귤류 같았지만, 온도가 내려갈수록 점점 히비스커스에 가까운 산미가 났습니다. 풀 같은 냄새와 풀 같은 쓴맛이 조금 났는데, 이 때문에 과일의 산미보다는 풀의 산미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된 듯합니다. 감칠맛에 가까운 복합적인 맛이 마음에 들었고, 나중에는 구수함도 느껴졌습니다. Aroma는 조금 구수하고, 조금 달콤하고, 조금은 레몬 같으며, 또 조금은 생담배 같았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해 마셨을 때는 커피에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맛과 향이 나타난, "산미에 중점을 둔 무난한 고득점 COE"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미가 특히 강하고, 바디가 조금 가벼운 편이고, 쓴맛이 적어 드립으로 마시기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터키시 커피로 추출해 마셨을 때에는 조금 부담스럽던 산미가 누그러지고, 촉감이 좀 더 진득해지고, 쌉쌀한 맛이 좀 더 강해지면서 "균형잡힌 고득점 COE"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파보일드 커피를 좋아하고 대개의 경우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한 결과물이 가장 마음에 들게 마련인데, 이런 이변(?)을 일으키는 원두를 종종 만나기 때문에 터키시 커피나 티포트 브루 커피를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순으로 올리던 리뷰는 일단 끝이 났습니다.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이네요. 다음 리뷰는 마흔다섯 번째 원두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또다시 원두 600g이 생겼으니 흥겨운 핸드 소트를(ㅋㅋㅋㅋㅋ) 하고, 맛을 보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14년에 구입한 2013년 COE 3종 세트에 대한 리뷰도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COE 커피가 200g에 1만 6천 원 이하라면, 수확한 지 1년이 지난 패스트 크롭(passed crop)이든 10위권 밖이든 일단 장바구니에 넣을 가치는 충분하다—는 말로 3종 세트에 대한 리뷰를 끝맺고 싶습니다.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과 같은 프로그램을 감상하다 보면 '잘 먹히는' 편곡 기법이 자주 등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면…


 ①건반과 현악기 정도의 편성으로 조용하게 시작

 ②반전이 들어가는 시점에서 사운드가 갑자기 풍성해짐(관현악이라면 대편성, 밴드라면 베이스와 드럼이 가세하고 기타에 드라이브가 강하게 들어감)

 ③클라이맥스 직전에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춤

 ④잠깐 동안의 침묵, 혹은 고요하고 성찰적인 보컬 솔로

 ⑤클라이맥스. 모든 악기가 달리고, 합창단이 있는 힘껏 코러스를 넣는다.

 ⑥청중 환호

 ⑦???

 ⑧승리!


 뭐 이런 식이겠지요. 커피 이야기로 돌아와서, COE라는 경연대회에서 무난하게 높은 점수를 받고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는 맛의 '시나리오' 또한 존재합니다. COE 커핑 자체가 중배전을 기준으로 8개 분야에 점수를 매기는 작업이니, 이 작업에 콩을 맞추는 것이죠.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COE 커피는 크고 넓은 문입니다. 비싸기도 하니까, 고속도로 톨게이트라고 하면 딱 맞겠네요. 일정 수준 이상의 로스터리라면 맛없는 COE를 제조(?)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COE는 맛있죠. COE를 주문했다면 맛있는 커피를 주문한 겁니다. 산미가 괜찮고 쓴맛이나 탄맛이 튀지 않는 커피를 좋아한다면 싼 값에 팔리는 COE 중 적당한 걸 집어들면 다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COE는 맛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건식 가공한 에티오피아 원두의 와인 같은 느낌이나, 인도네시아 원두의 흙 같은 콤콤함, 강배전에서 오는 기분 좋은 쌉쌀함을 원한다면 COE 바깥에 있는 원두를 찾아야 합니다. 탐험가 기질이 있는 리뷰어가 이 '좁은 문'을 기웃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