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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케냐 AA 탐바야 (Kenya AA Tambaya) 200g

 입수일 : 2015. 4. 12.

 입수처 : 커피플랜트 (2015 서울커피엑스포에 설치된 부스에서 구입)


 저의 쉰다섯 번째 커피는 케냐 AA 탐바야였습니다.



 무척 오랜만의 케냐입니다. 케냐 루타카를 선물받은 게 11개월 전, 끄레모소의 케냐 AA Top을 선물받은 게 1년 6개월 전이니까요. 올해 커피엑스포에서는 엘살바도르와 케냐 원두를 입수해야겠다고—그러니까, 단짝에게 사 달라고 졸라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정해 둔 상태여서 물건 고르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케냐를 정해 두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전에 리뷰한 케냐 루타카는 개성이 매우 강해 '전형적인' 케냐의 특성을 거의 지니지 않았고, 케냐 AA Top은 풀시티 후반의 강배전이어서 그 맛이 대단히 자극적이고 강렬했거든요. 시티 정도로 볶은 전형적인 케냐를 리뷰한 적은 없습니다. 케냐는 주요 커피 산지 중에서도 특히 무게가 나가는 곳입니다. 에티오피아와 함께 아프리카 커피의 쌍벽을 이룬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나라이고, 바디감 좋은 커피와 와인 느낌이 나는 커피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산지이기도 합니다. 케냐가 이만큼 중요하다면, 케냐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원두를 골라 마셔 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풀시티 후반의 강배전은 이미 맛보았으니, 시티 정도로 볶은 전형적인 케냐를요. 엘살바도르처럼, 공부하는 마음으로 골라든 원두였습니다.




 결점두를 골라내기 위하여 봉투를 개봉하니, 견과류를 닮은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결점두는 좀 있는 편이었는데, 노트의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COE나 스페셜티가 아닌) 일반 등급 원두 치고는 나쁘지 않고 손이 좀 가는, (결점두가) 많다고 까기엔 좀 미안하고 적다고 감싸주기엔 좀 많은 수준". 퀘이커로 간주해 골라내는 옅은 황토색 콩, 기형/미성숙 콩, 조가비 모양의 콩, 깨진 콩,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크랙이 난 콩, 주름이 덜 펴진 콩 등이 골고루(?) 나왔습니다. 핸드 소트를 하는 보람이 있으면서도 첫인상을 망칠 만큼 생두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 대략 그러한 수준의 상태였습니다.


 케냐 AA 탐바야는 에티오피아를 꽤 닮았습니다. 케냐 AA 탐바야의 바디감이 상당히 좋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 외의 특성들—견과류를 닮은 고소함, 감귤 같은 산미, 와인의 느낌—은 습식 가공한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나 건식 가공한 에티오피아 하라·짐마의 인상을 풍깁니다. 커피를 홀짝이는 내내 '이거 왠지 에티오피아 같은데…' 같은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울 만큼요.


 터키시 커피로 추출한 케냐 AA 탐바야는 'medium to full body' 정도로 표현할 만한, 중간 정도보다는 좀 더 강한 바디감을 보였습니다. 첫 모금에서 적당한 쌉쌀함과 다크초콜릿을 조금 닮은 감촉이 감지되었고 견과류를 닮은 고소함이 잠깐 스쳤습니다. 케냐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와인의 느낌도 났고요.[각주:1] 적당한 온도에 진입하면 감귤 같은 산미가 올라옵니다. 좀 더 식으면 산미가 줄고 바디가 무거워집니다(풀 바디라고 불러도 될 만큼요). 커피에 기대할 만한 요소 중 특정한 맛이 빠져 있지 않고, 특정한 요소가 지나치게 튀지 않는다는 점에서 밸런스가 좋은 편이고 다재다능한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하면 바디가 조금 가벼워집니다. 조금은 와인 같고 고소하고 새콤한 것이 에티오피아 같기도 하고 예멘 모카 마타리 같기도 합니다. 적당한 온도에 진입하면 산미가 올라오는데, 상당히 강렬합니다. 좀 더 식으면 산미가 줄고 바디가 무거워집니다(중간 정도의 바디감입니다). 견과류를 닮은 고소함은 파보일드 쪽에서 좀 더 잘 드러나고, 와인의 느낌은 터키시 쪽에서 좀 더 잘 드러납니다. 파보일드로 추출한 케냐 AA 탐바야는 예멘의 고급스러움을 보탠 에티오피아 습식 정도의 인상을 주는, 케냐답지 않게(?) 경쾌한 커피입니다.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하면 풀 바디에 가까운 풍부한 바디와 풍부한 다크초콜릿의 감촉, 일찍 올라오는 산미와 복합적인 양상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산미는 조금 누그러지고 달달한 특성이 좀 더 잘 드러납니다.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편안하고 부드러운 커피, 밸런스가 뛰어난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잔의 밑바닥으로 강해지는 산미는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이 커피의 포인트가 되어 줍니다.




 케냐 AA 탐바야는 산미와 바디감이 좋고 와인 느낌이 나면서 쓴맛이 강하지 않은 커피입니다. 시티 정도로 볶은 습식 원두로서는 제법 진한 커피를, 헙@ㅁ@!을 기대하게 마련인 케냐로서는 제법 부드러운 커피를 추출할 수 있고요. 청량감이 필요한 한여름의 한낮에 마시기에는 조금 아쉬운 커피일 수도 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두루두루 무난하게 어울리는 커피입니다. 케냐가 주요 커피 산지 중에서도 특히 무게가 나가는 이유를 납득할 만했습니다.




 각주


  1. 보통 와인의 느낌은 건식 가공한 커피에 나타나게 마련인데, 일반 등급의 케냐 커피는 습식 가공한 커피도 와인의 느낌을 냅니다. 건조 과정에 비결이 있는 걸까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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