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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카페 리뷰

학림다방 (2016)

느린악장 2016. 2. 22. 08:35

 학림다방을 방문하고 리뷰를 처음 작성한 것이 2014년 가을의 일입니다. 계절이 한 바퀴 반쯤 돌았다는 점에서는 긴 시간이고, 60년 전통의 학림다방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입니다. 한동안 대학로 쪽에 자주 갈 일이 생겨 학림다방을 재방문하게 되었고, 다시 리뷰할 필요성을 느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들고 있습니다. '예약석'은 사라졌으며(사진 찍는 자리로 테이블 하나를 비워 둘 여유가 없을 만큼 미어터지고 있습니다), 평일 저녁에도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장년 손님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젊은 손님들(과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늘었고, 안쪽의 벽면에는 (명동 민들레영토의 벽이 그러하듯) 낙서가 많아졌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점만 빼면 번화가의 평범한 카페와 똑같아진 셈입니다.


 학림다방이 겪은 변화가 이것으로 끝이라면 그냥 '요즘 사람이 좀 많아졌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겁니다. 진짜 충격적이었던 점은… 커피 맛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에스프레소, 레귤러 커피, 로열 브랜드를 몇 잔 마셨는데, 건열(dry distillation) 특성과 쓴맛이 강했습니다. 톡 쏘는 향신료의 풍미와 짭짤함으로 보건대 소량의 인도네시아가, 와인의 느낌으로 보건대 소량의 케냐(습식) 또는 에티오피아(건식)가, 커피를 마신 뒤 입 안에 남은 특유의 향으로 보건대 소량의 로부스타가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의 학림 블렌드는 쓴맛이 강하지 않았고, 드립 커피에 잘 어울리는 중배전~중강배전 블렌드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강배전 에스프레소 블렌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드립 메뉴에도 동일한 원두를 쓰고 있죠! 강배전을 하는 로스팅과 로부스타가 들어간 블렌드를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지금 학림다방에서 사용중인 원두는 명백하게 에스프레소를 염두에 두고 블렌딩하고 로스팅한 원두이고, 드립 커피 용도로는 상대적으로 부적합합니다(드립 커피용 블렌드가 별도로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쭝 응우옌 G7 커피를 리뷰하며 느낀 것인데, 건열 특성과 쓴맛이 강하고 로부스타가 들어간 블렌드는 스트레이트로 즐기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적합합니다. 대신 생크림을 올려 비엔나 커피를 만들거나, 연유를 넣어 베트남식 커피를 만들면 맛이 좋죠.


 학림다방이 사용하는 원두의 성향이 강배전 에스프레소 블렌드(결과적으로, G7 커피에 가까운 맛을 내는)에 가까워진 지금, 학림다방의 스트레이트 커피는 예전처럼 맛이 좋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에스프레소는 평범한 커피 체인점의 그것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평이했고, 로열 브랜드는 쓴 맛 나는 검은 물에 가까웠고, 레귤러 커피는 스타벅스의 (에스프레소 초이스 옵션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 같은 맛이었습니다. 학림다방에 방문하게 된다면, (강배전 특유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카페 라테나 비엔나 커피 같은 배리에이션 커피를 우선 고려하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변화가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되, 낡지 않게 가꾸어나가는", 학림다방의 "고풍(古風)이 아닌, 고(古)"를 높게 평가했던 저에게, 학림다방의 이러한 변화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물론 이렇게 변하고 나서 학림다방은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고, 그렇다면 학림다방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는 저 같은 사람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학림다방의 변화가 못마땅하기보다는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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