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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동등해지는 시간, Equal Time."


 예전에 쓴 글에서 언급했지만, 공정무역을 통해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이를 테면 산체스 씨네 커피를 조금 비싼 가격으로 사들여 산체스 씨가 비바람이 새는 집을 수리할 수 있게 한다면, 그래야 하는 이유는 집에 비바람이 새면 불쌍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비바람이 새지 않는 집에서 살 만한 권리쯤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 태어났든, 얼마나 배웠든, 얼마나 알든 상관없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인식—저는 아름다운커피 이퀄의 광고 카피가 이러한 인식에 맞닿아 있으며, 따라서 공정무역의 핵심을 짚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분 표기에는 "유기농 아라비카 인스턴트커피 90%[콜롬비아 75%, 파푸아뉴기니(독일제조) 25%], 유기농 아라비카 볶은커피 10%(페루 50%, 우간다 50%)"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분 형태로 첨가되는 페루 원두와 우간다 원두는 각각 "안데스의 선물", "킬리만자로의 선물"이라는 상품명으로 팔리는 아름다운커피의 원두를 사용하는 듯하고, 인스턴트(물에 풀면 녹는 형태)는 다른 곳에서 제조하는 것 같습니다.(이퀄의 제조원이 (주)제이엔푸드라고 되어 있는데, 콜롬비아 인스턴트를 제조하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퀄은 주로 콜롬비아 커피의 느낌을 줍니다. 부드럽고, 쓴맛이 적고, 신맛도 적고, 맛과 향이 적당히 고소합니다. 인스턴트 커피가 스틱커피 전체의 맛과 향을 주도하는, 그것도 비교적 좋은 방향으로 주도하는 예입니다. 흥미로운 일이지요.


 또 다른 예전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프림과 설탕을 넣어 마실 용도로 나오는 인스턴트 커피를 '블랙 커피'로 마시면 맛이 없고, 그 이유는 인스턴트 커피가 적은 양의 원두로 많은 양의 커피를 추출하여 만들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인스턴트 커피 제조에 투입하는 원두의 양을 늘리면 단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프리미엄 스틱커피를 개발하는 보통의 개발자는 인스턴트는 적당히 만들고 소량 갈아넣는 아라비카 미분으로 맛의 포인트를 잡을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이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인스턴트 쪽의 품질을 높여 잡은 것이죠.


 저는 '마일드한 프리미엄 스틱커피'라는 포지션을 잡았다는 점에서 이퀄의 가치를 높이 사고 싶습니다. 시장을 선점한 카누나 루카는 커피 체인점의 아메리카노를 모델로 삼은 듯하고, 후발주자인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는 산미가 장점입니다. 신맛도 싫고 강배전한 쓴맛도 싫은데 스틱커피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 아직 없는 것이죠. 이퀄은 여기에 딱 맞는 제품입니다.


 품질 개선의 여지는 조금 남아 있습니다. 아주 조금, 로스팅 과정에서 덜 익은 듯한 떫은 맛이 느껴지거든요. 떫기가 재앙 수준으로 샤프했던 칸타타 노뜨와는 달리 이퀄의 떫은 맛은 '복합적인 맛'의 일부로 쳐줄 수 있을 만큼 강도가 약합니다. 아라비카 미분으로 맛에 포인트를 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떫은 맛은 능히 덮을 수 있을 테고, 케냐나 에티오피아 습식 정도를 섞으면 딱일 텐데, 아름다운커피가 이들 나라에 진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정무역 사업가의 손길이 급한 나라가 아직도 많은데, 지주회사 만들고 조합 만들고 하면서 스스로 잘 해 나가고 있는 나라에 도와주겠답시고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요.


 산미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커피지만, 강배전 특유의 쓴맛(탄맛)을 싫어하는 저에게는 부드러워서 만족스러운 커피였습니다. 한 번쯤 마셔볼 만한 프리미엄 스틱커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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