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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커피와 그 뒷이야기"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통하는 '세계 삼대 커피'의 목록과 한국에서 통하는 '세계 3대 커피'의 목록은 조금 다릅니다. 일본의 세계 삼대 커피에는 예멘 모카 마타리 대신 탄자니아 킬리만자로가 들어갑니다.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이 1953년 일본에서 개봉되면서부터 킬리만자로가 커피 브랜드로 인식되었고, 헤밍웨이가 킬리만자로 커피를 좋아한다고 알려지자 킬리만자로 커피의 인기가 일본에서 올라간 탓이죠.
하지만 한국에서 헤밍웨이는 존경받는 예술가지 사랑받는 예술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밍웨이의 커피'라고 선전하면 뭔가 있어보이긴 하는데 그것이 실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은 좀 낮지요. 그래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예술가 고흐를 끌어들여 제법 비싼 예멘 모카 마타리를 집어넣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집에 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권과 2권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편의상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권에서 발췌한 내용은 '1권'으로 출처를 표기하고, 2권에서 발췌한 내용은 '2권'으로 출처를 표기하겠습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시리즈의 기획 의도가 고흐의 커피 덕질(…)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다 보니 커피에 관련된 내용은 조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서를 뒤적이며 고대국어 음차표기를 찾아야 했던 국문학자의 기분을 8g정도 맛본 시간이었습니다.
고흐가 자기가 마시는 커피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다음의 내용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이 '고흐는 예멘 모카 마타리를 사랑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최대의 떡밥으로 쓰이고 있지요.
계속 그림을 그리려면, 이곳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에서 약간의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꼭 필요하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야식으로 찻집에서 두 잔째의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빵을 먹거나 가방에 넣어둔 호밀 흑빵을 먹어도 좋겠지. (1권, pp.140-141)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5년 12월 28일
하지만 앞뒤의 내용까지 포함해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돈을 받을 때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무엇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비록 그동안 밥을 못 먹고 있었지만,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그림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손에 들어오는 즉시 모델을 구하러 나가서는 돈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작업한다.
계속 그림을 그리려면, 이곳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에서 약간의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꼭 필요하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야식으로 찻집에서 두 잔째의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빵을 먹거나 가방에 넣어둔 호밀 흑빵을 먹어도 좋겠지. 그러나 모델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나약한 감정이 나를 덮치곤 한다.
고흐에게는 커피나 빵보다 그림이 더 간절했던 것입니다. 다른 편지에 '모델에게 모델비를 주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쓴 걸 보면, 커피는 모델과 함께 하는 식사에 딸려나오는 음료수에 가깝습니다. 고흐가 뭔가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
덧붙여, 고흐에게 카페는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또는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해서, 또 부드러운 녹색과 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해서,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 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1권, pp.208-210)
편지에 언급되는 커피나 카페 이야기들을 마저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왠지 사족 같으므로 더보기 안에 묶겠습니다.
사실 고흐는 술꾼이었습니다. 고흐는 파리에 머무를 때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과음과 퇴폐적인 생활을(1권, p.136 : 챕터 해설)' 했다고 합니다. 이 때 건강을 망치고도 고흐는 술을 끊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에서도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담배도 피웠죠. 고흐의 육신을 지탱한 것은 커피라기보다는, 술과 담배였던 셈입니다. 4
이곳의 공기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너도 이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그 덕분에 코냑 한 잔만 마셔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고, 따로 자극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피가 잘 돌고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1권, p.166)
그림 그리는 일은 힘든 노동과 딱딱한 계산을 병행하는 일이다. 그래서 작업 중에는 어려운 배역을 맡고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극도로 긴장하게 되고, 단 30분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작업을 마치고 나서 긴장을 풀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술 한잔 마시거나 독한 담배를 피우면서 멍하니 취해 있는 것이다. 별로 품위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1권, p.192)
고흐는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당시 돈으로) 160~170프랑 정도를 쓴 것 같습니다. 생활비로 100프랑 정도를 쓰고, 모델비와 모델과 함께 하는 식사비로 60~70프랑을 썼겠지요. 8 버터 바른 빵이 2프랑, 우유 한 잔이 1프랑이라 늙은 수도승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9 빵 사먹을 돈으로 술도 마셨을 테니—그것도 건강을 망칠 만큼 꽤 많이 사 마셨을 테니 커피 마실 돈은 넉넉지 않았을 겁니다. 고급 커피를 즐길 만한 여유는 더더욱 없었을 테고요. 10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고흐에게 커피는 모델과 함께 하는 식사에 딸려나오는 음료수 같은 것이었다.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② 고흐는 커피보다 술과 담배에 의존했다.
③ 고흐의 경제적 사정은 넉넉지 않아서, 고급 커피를 즐길 형편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예멘 모카 마타리를 사랑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자, 이쯤에서 마지막 쐐기를 박아보겠습니다. 고흐가 활동하던 당시(19세기 말)의 예멘 커피는 어떤 커피였을까요?
예멘 커피가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절은 17세기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예멘의 모카 항에서 커피가 수출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커피 씨앗의 외부반출이 금지되어 있었고, 공급이 딸리는 커피 값은 나날이 치솟았으니까요. 하지만 18세기 초 네덜란드인이 커피묘목을 밀반출해 자바와 실론에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독점은 끝이 났습니다. 11 12
흥미로운 건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여전히 아라비아 커피를 선호했기 때문에 일부 업자들은 자바나 브라질산 커피를 알마카로 싣고 와서는 모카 커피로 둔갑시켜 유럽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고 한다. 긴 항해 도중 상한 빈들을 다시 씻고 말려서 수출한 커피의 품질이 좋았을 리가 없다." 13
게다가 고흐가 살았던 19세기 말은 영국이 아덴 항을 아라비아 지역 물류항으로 개척(1839)한 데다 수에즈 운하도 개통된(1869) 후라서 모카 항이 쇠락할대로 쇠락한 시기입니다. 모카 항의 명성이 옛날만 못한데 모카 커피의 명성이 옛날만했을 리가 없습니다.
일단 반 고흐가 마신 '싸구려 커피'는 오리지널 모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적항 이름만 모카인, 가짜 모카였겠죠. 설사 오리지널 모카를 (몇 차례, 혹은 계속) 마셨다고 해도 당시 모카는 한 물 간 커피 취급을 받았지, 오늘날 한국에서처럼 '귀하신' 세계 3대 커피 어쩌고 하면서 비싸게 팔리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19세기 중반 자메이카와 자바는 주요 아라비카 재배지(수출지)였다고 하니, 19세기 후반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을 테고 상대적으로 모카는 위축되었을 겁니다. 14
결국 고흐가 예멘 모카 마타리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고흐의 사정으로 보나 당시의 모카 커피의 사정으로 보나 근거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주장입니다. 한 번 구글에 "빈센트 반 고흐" "예멘 모카 마타리"를 <한글>과 <영문>으로 검색해 보세요. 한국어 웹에서는 그렇게 많이 검색되는 자료가 해외 웹에서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한국인 블로거끼리(때로는 커피 판매자도!) 펌질을 하다 보니 자료가 여기저기 뿌려지면서 정설처럼 자리를 잡았다고 보아야겠죠. 이른바 '세계 3대 커피'와 거의 같은 경우입니다.
믿을 만한 전기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는 진짜로 예멘 모카 마타리를 좋아했다'고 쓴 구절이 발견된다면 저는 이 글의 내용을 철회해야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팬들이 '반 고흐와 소통하는 길은 마타리를 마시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한다고요? 설마요.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고 독한 담배를 피운다면 또 모를까.
각주
- "한 달에 100프랑이면 나 혼자 쓰기에는 충분하지만 매일 모델비를 주고 그들과 식사 등을 하려면 부족하거든. 게다가 물감과 종이 값도 만만치 않구나." (1권, p.47) [본문으로]
- 고흐의 그림 <아를의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1888년 9월) 참조. [본문으로]
- 고흐의 그림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1888년 9월) 참조. [본문으로]
- "이 빌어먹을 건강 문제만 아니라면 두려울 게 하나도 없겠다. 그러나 파리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내 위장이 너무 약해진 것도 그곳에서 싸구려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지. 여기에도 싸구려 포도주가 많지만 거의 마시지 않는다." (1권, p.171) [본문으로]
-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로 이사하고 나서 테오에게 보낸 편지. [본문으로]
- 술꾼이었던 화가 몽티셀리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나온 말이지만, 고흐도 작업이 끝나면 술을 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 고흐의 이웃들이 "고흐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진정서를 시장에게 내어 고흐가 집에 감금되자, 테오에게 보낸 편지. [본문으로]
- "돈 문제와 관련해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50년을 살면서 1년에 2,000프랑을 쓴 사람이라면 평생 10만 프랑을 쓴 게 되는데…" (1권, p.218) ※1년에 2,000프랑이면 한 달에 약 166.67프랑이 됩니다. [본문으로]
- "한 달에 100프랑이면 나 혼자 쓰기에는 충분하지만 매일 모델비를 주고 그들과 식사 등을 하려면 부족하거든. 게다가 물감과 종이 값도 만만치 않구나." (1권, p.47) ※1년에 2,000프랑을 쓴다는 앞의 편지보다 6년 8개월쯤 전에 쓴 편지입니다. 인플레이션을 무시하면, 한 달에 생활비로 100프랑, 모델비로 166.67-100=66.67프랑을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 "1프랑을 주고 우유 한 잔을 마시고, 2프랑을 주고 버터 바른 빵을 먹는다. 그런데 그림은 팔리지를 않는다. 그래서 늙은 수도승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1권, p.202) [본문으로]
- 여동완·현금호 ≪Coffee≫ (2004) 가각본. p.106 [본문으로]
- 장수한 ≪인디커피교과서≫ (2012) 백년후. p.148 [본문으로]
- ≪Coffee≫, 위와 같음. [본문으로]
- ≪Coffee≫, p.92, p.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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