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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뮤제오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링크> 나의 마음을 커피에게 준다면, 커피의 맛이 달라질까? '사랑해'라고 말해주면 맛있어지고, '미워해'라고 말해주면 맛없어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류의 실험이었습니다. 에모토 마사루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이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서 : "'사랑과 감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책의 메시지는 좋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근거가 조작된 것이고 해석 또한 엉터리라면,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각 국의 신과학 지지 모임에만 참석하지 말고 연구 결과를 저명한 과학저널에 제출해 심사 받기를 권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 책은 근래에 나온 최악의 '과학' 도서가 될 것이다." <링크> - '질문자 채택 답변'에 인용된 내용을 재인용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출판사의 반론에 대한, 정재승의 재반론 : "김 주간의 반론문에 흐르는 주된 논리 가운데 하나는 '책 내용이 의심스럽다고 반박하려면 그 근거를 대라'는 것이다. 이것은 초자연 현상을 믿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논리적 오류다. 어떤 현상이 사실이라고 주장할 때에는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스스로 제시해야지, '사실이 아니란 증거는 있느냐'고 반박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링크>


 제가 카뮤의 실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첫 번째 인용문에 들어있네요. 사랑과 감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메시지는 좋지만, 근거와 해석이 엉터리라면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이 실험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점은 세 가지입니다.


 1. 처치(사랑/증오)가 3주에 걸쳐 가해졌습니다. 로스팅한 원두가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2. 샘플이 사랑커피 1봉지 증오커피 1봉지입니다. 절대 충분한 크기의 샘플이 아닙니다.

 3. 실험자는 어느 커피가 사랑커피고 어느 커피가 증오커피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실험자의 편견이 끼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실험 설계를 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했어야 합니다.


 1. 처치 기간을 줄입니다. 상온에 로스팅한 원두를 두고 처리를 할 생각이라면 1주일을 넘기지 않는 게 좋습니다.

 2. 샘플 수를 늘립니다. 사랑커피 20봉지 증오커피 20봉지 정도는 되는 편이 좋습니다.

 3. 실험자도 어느 커피가 사랑커피고 어느 커피가 증오커피인지 모르게 더블블라인드 테스트를 설계합니다.




 더블블라인드 테스트를 설계하는 간단한 방법은…


 1) 실험자를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눕니다. A그룹은 1명이어도 충분합니다.

 2) 실험자 A그룹은 사랑커피와 증오커피에 무작위로 일련번호를 할당합니다. (#1=사랑, #2=사랑, #3=증오, #4=사랑, #5=증오 …)

 3) 실험자 A그룹은 어느 일련번호가 사랑커피인지 증오커피인지 목록을 정리한 다음, 실험이 끝날 때까지 목록을 감춥니다. 그리고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B그룹의 사람과 '몇 번이 사랑커피다/증오커피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피험자와 만나서 실험을 진행할) 실험자 B그룹은 어느 커피가 사랑커피인지 증오커피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4) 실험자 B그룹은 커피를 추출합니다. 몇 번 샘플에서 추출한 커피인지 커피잔에 표시하고, 피험자가 알 수 없게 숨깁니다. (<이렇게 생긴> fold-over tag 안쪽에 번호를 적고,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태그를 붙여 버리면 되겠지요) 샘플마다 적어도 5잔을 추출하는 편이 좋습니다. 샘플 개수가 총 40개니, 적어도 200잔 이상의 커피가 나올 겁니다.

  ─ 이를 통해 피험자는 어느 커피가 사랑커피인지 증오커피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샘플번호조차 모르겠지요.


 5) 선택사항 : 피험자에게 커피를 제공하고 반응을 정리하는 실험자 C그룹을 따로 만듭니다.

  ─ 이러면 시험자도 샘플번호를 전혀 알 수 없겠지요. 굳이 나누지 않아도 어느 커피잔이 몇 번 샘플인지 기억하기 힘들겠지만…


 6) 커핑을 하고 반응을 기록합니다.

 7) 반응을 기록하고 나서 커피잔에 표시된 샘플 번호를 확인하고 '몇 번 샘플에 대한 반응임'을 기록합니다.

  ─ 이를 통해, 실험자가 '몇 번 샘플에 대한 반응이다'는 걸 미리 알고 있음에 따른 편견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8) 실험자 A그룹은 몇 번 샘플이 사랑커피인지 증오커피인지, 그 목록을 공개합니다.

 9) 사랑커피의 점수와 증오커피의 점수를 계산하고 비교합니다. 간단한 커핑 프로토콜이라도 만들어 점수를 내면 t-test하기 좋겠지요.

 10) 점수를 냅니다.


 이 정도로 설계해서 진행하면, 사랑커피와 증오커피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점수 차이는 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정상이기도 하고요.




 커피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두의 품종, 재배 환경, 농법, 수확법, 가공법, 로스팅, 유통 및 보관 환경, 추출법(그리고 여기에 포함되는 분쇄 입도, 물의 온도, 추출 시간 등)과 같은 것들이지 커피에 담는 사랑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품종에서 추출법까지 동일한 조건을 유지한다면, 이론적으로 커피 맛은 동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커피에 사랑을 담으면 취미로서의 커피, 직업으로서의 커피를 좀 더 기쁘고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커피의 맛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사랑을 담아 추출한 커피가 별 세 개(★★★) 짜리일 수도 있고 사무적으로 추출한 커피가 별 다섯 개(★★★★★) 짜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도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고 성실함을 유지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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