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커피의 맛과 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들 합니다. 맛과 향은 사람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준을 명확히 정해두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기 쉽지요. "이 커피가 무슨 '새콤'이야, '시큼'이지!" "'새콤' 맞거든요?"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말싸움도 벌어질 테고 말입니다.


 커피를 평가할 때 맛과 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이 표현의 기준이 되는 것, '공용어'가 되는 것이 Coffee Taster's Flavor Wheel(이하 Flavor Wheel, FW)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SCAA의 executive director였던 Ted Lingle이 만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Lingle은 신맛, 단맛, 짠맛, 쓴맛이라는 '네 가지 맛'의 프레임에 상당히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언뜻 보기에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맛들을 네 가지 범주에 우겨넣으려는 무리수가 꽤 보이거든요. Tastes/Aromas쪽의 FW를 보면 단맛(sweet)의 하위범주에 acidy('산미'쯤으로 표현될 신맛)가 들어가고 짠맛(salt)의 하위범주에 bland('밍밍함')가 들어가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5의 맛이라고도 하는 감칠맛[각주:1]은 "짠맛·염류(salt)와 수용성 지방이 결합된 것이므로"[각주:2] 짠맛의 하위범주에 넣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니까요.


 이것 말고도 협과(莢果, legume)인 땅콩을 볶은 듯한 냄새가 '견과류(nut-like)'의 하위범주에 속하고, 정작 '협과'는 '녹초/허브(herby)'에 가서 붙었으며, 모범적인 견과류인 헤이즐넛은 '캔디(candy-like)'의 하위범주… 게다가 향신료의 일종으로 취급되는 고수(coriander)나 카르다몸(cardamom)는 '향신료(spicy)'가 아닌 '방향성(芳香性, fragrant)'에 가서 붙었습니다. 그러니까 볶은 헤이즐넛 향기가 나는데 헤이즐넛은 견과류니까(게다가 이름에 '넛'까지 들어가니까!) 'nut-like'라고 표현하면 틀리고, 고수 향기가 나는데 고수는 향신료니까 spicy라고 표현하면 틀립니다. 뭐라고요?!


 글머리를 짧게 잡느라 떼어먹은 문장을 여기에 좀 붙이겠습니다. 제대로 된 기준이나 공용어는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을 보완하고, 각자의 감각기관으로 느낀 커피의 맛과 향을 나누는(즉, 소통하는) 도구로서 기능합니다. 내가 한 달 전에 케냐를 마시고 '맑은 신맛이 난다'고 써놨는데 지금 마시는 이르가체페의 신맛과 비교하려니 대체 '맑은 신맛'이 어떤 맛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면(그리고 '맑은 신맛'이라는 표현을 통해 한 달 전에 마신 케냐 커피의 맛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맑은 신맛'이라는 표현은 나의 기억을 보완하는 도구로서 실격입니다. 영희가 '맑은 신맛'이라고 썼는데 그 표현을 접한 내가 '맑은 신맛'이 어떤 맛인지 떠올릴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맑은 신맛'이라는 표현은 영희와 나의 소통 도구로서 실격이겠죠.


 몇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Flavor Wheel이 커피업계의 '공용어'로 기능하는 건 이런 필요에 부합하기 때문일 겁니다. 부제가 <A Guide to the Coffee Taster's Flavor Wheel>인, 잡지 <<Roast>>의 2012년 5·6월호 기사가 "Do you speak coffee?"(대략, "커피어語 할 줄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모습은 FW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지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FW의 nut-like나 winey같은 표현은 '진득한 고소함'이나 '힘이 있는 산미'같은 표현보다는 훨씬 더 유용한 기억 보완 도구이자 소통 도구일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시리즈의 글은 다음 문서를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저의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이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동완, 현금호 (2004) <Coffee> 가각본.

 장수한 (2012) <인디커피교과서> 백년후.

 http://roastmagazine.com/education/RoastersDictionary.pdf

 http://www.roastmagazine.com/resources/Articles/Roast_MayJun12_WellRoundedPalate.pdf




 Tastes


 앞서 말한 바와 같이 Lingle은 커피의 맛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하였지만, 저는 FW에 나열된 맛들을 크게 3가지로 재분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맛 : Soury, Winey, Acidy와 그 하위 범주

 부드러움(?) : Mellow, Bland와 그 하위 범주

 자극성 : Sharp, Harsh, Pungent와 그 하위 범주




 1. 신맛


 Acidity의 번역어로 쓰이는 산미는 '기분 좋게 톡 쏘는 특성'으로, 고지대 커피에서 나타납니다[각주:3]. 커피의 산미는 맛이 좋게 느껴져야 좋은 것이지 pH값이 낮다고(즉, 산도가 강하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평가의 기준이 pH가 아닌 느낌(쾌/불쾌)입니다.


 신맛이 강하나 질이 좋지 않으면 soury입니다. 덜 익은 생두를 볶았거나, 체리에서 생두를 얻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이런 맛이 난다고 합니다. 생생한 산미와는 다른 '시큼함, 불쾌함' 등으로 표현됩니다. 식초프레소와 같은 속어가 가리키는 맛도 이런 맛이 되겠지요.


 레드와인의 신맛은 winey입니다. '달콤쌉싸름함이 포함된 신맛' 정도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케냐 커피가 winey한 맛으로 유명하며, 건식으로 가공된 에티오피아 커피(하라, 짐마 등)와 예멘 모카도 winey하다고 표현한 글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와인과는 다른 양상의 신맛이 acidy입니다. '생과일의 새콤함, 톡 쏘는 신맛, (혀를) 꼬집는 듯한 느낌)'등으로 표현됩니다. 산미가 풍부하지만 winey하지는 않다고 평가받는 코스타리카나 과테말라의 고지대 커피(코스타리카 타라주, 과테말라 안티구아 등)가 이런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부드러움(?)


 부드러움은 밸런스가 잘 잡힌 커피(즉, 특정한 맛이 튀지 않는 커피)가 중간 혹은 중간 이하의 산미를 가졌을 때 얻을 수 있는 맛의 특성입니다.


 부드러움이 기분 좋은 섬세함과 달콤함으로 나타나면 mellow라고 하며, 이 mellow의 하위범주에 속하는 mild는 제법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각주:4]. 콜롬비아 커피가 mild한 맛으로 유명하며, 엘살바도르 커피도 mild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 특성(부드럽다, 온화하다, 섬세하다)을 갖는다고 표현한 글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밍밍함으로 나타나 긍정적인 맛의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 bland라고 합니다. 추출법이 잘못되었거나[각주:5] 재배지의 고도가 낮다면[각주:6] 이런 맛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3. 자극성


 자극성을 나타내는 표현에는 sharp, harsh, pungent가 있습니다. 각각의 표현을 찾아보면 뒤죽박죽일 때가 많아서 셋을 명확히 구분할 기준을 찾기 힘듭니다. (이래서 Coffee Cupper's Handbook이 있어야 하는 건가 봅니다)


 어찌어찌 정리해 보면 백반 혹은 명반을 혀에 올렸을 때의 떫고 짜고 시고 한 날카로운 느낌이 sharp, 수산화물을 혀에 올렸을 때의 쓰고 떫고 거친 느낌이 harsh, 페놀 화합물(나무타르 크레오소트라든가)과 같은 물질의 쓴맛이 pungent입니다. 하나같이 맛보기 꺼려지는 물질들이라, 정확한 맛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각주


  1. savory(형용사) 또는 umami(명사)로 번역되는데, 커피 세계에서는 umami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2. http://www.roastmagazine.com/resources/Articles/Roast_MayJun12_WellRoundedPalate.pdf [본문으로]
  3. 하지만 역은 성립하지 않아서, 고지대 커피라고 모두 산미가 뚜렷한 건 아닙니다. 만델링이 대표적인 반례입니다. [본문으로]
  4. mellow는 산미가 강하지 않음을 내포하고 mild는 어느 정도의 달콤함을 암시하지만, 산미가 제법 뚜렷하고 달콤한 맛이 그다지 없어도 (케냐/코스타리카/과테말라 같은 커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드러우면' 그냥 mild를 붙여주는 모양입니다. [본문으로]
  5. 물의 양이 많거나, 원두의 양이 적거나, 원두를 너무 굵게 분쇄했거나, 추출 시간이 너무 짧거나, 물의 온도가 낮거나… [본문으로]
  6.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의 저지대 커피, 브라질의 저지대 커피가 이런 특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