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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에티오피아 시다모 내추럴 G3 (Ethiopia Sidama Natural G3) 200g - 추정치

 입수일 : 2014. 2. 7.

 출처 : 클럽 에스프레소


 저의 스물세 번째 커피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내추럴이었습니다. (알파벳 표기를 Sidamo가 아닌 Sidama로 한 이유는, 이 블로그의 용어와 표기법에 나옵니다)



 선물받은 커피입니다. 친구가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44번째 커피중독자 시리즈 500g을 사서 얼마간을 나누어준 것입니다. 르완다 마헴베 킹콩 500g을 사서 절반을 나누어주려고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뜻하지 않게 이런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번에 진 신세를 갚을까 했는데 또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시다모 내추럴 역시 한 번은 꼭 마셔보고 싶던 커피여서 많이 기뻤습니다.


 여담이지만, 저의 "한 번은 꼭 마셔보고 싶은 커피" 목록은 사실상 지금까지 못 마셔 본 커피의 전부 다입니다. 이 목록에서 빠져나가는 건 몇 개 없습니다. 갈라파고스, 마다가스카르, 아이티, 카메룬, 콩고, 그리고 코피 루왁 정도나 '안 마셔도 아쉬울 게 없는 커피'의 목록으로 빠집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Fortnum & Mason의 레위니옹 부르봉 원두를 살 목적으로 영국 여행을 계획한다거나, 세인트헬레나 생두를 구입해 로스터리 카페 사장님께 기술료를 드릴 테니 볶아달라는 부탁을 드린다거나 할 것이라는 소리이고, 그 전에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과테말라 엘 인헤르토,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샤 같은 비싼 커피를 다 마셔볼 것이란 소리입니다)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 건식 가공한 것으로는 예멘 모카 마타리에티오피아 하라 정도가 있었습니다. 둘 다 와인의 느낌이 나는 커피였죠.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를 했습니다. 개봉하는 순간, 저의 기대와는 많이 다른 냄새가 났습니다.


 이르가체페의 깨와 같은 고소함, 세하도의 견과류 같은 고소함과는 다른, 익히지 않은 고구마를 자른 절단면에서 나는 듯한 냄새와 익힌 고구마의 고소함과 달콤함이 섞인 듯한 냄새였습니다.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는 독특한 fragrance였죠.


 와인의 느낌이 나는 예멘이나 하라를 마실 때도 그랬지만, 이번 시다모 내추럴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일보다는 브라질 세하도나 과테말라와 반씩 섞어서 마시는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브라질 세하도와 시다모 내추럴을 반씩 섞었을 때는 세하도의 고소함이 시다모 내추럴의 조금 역할 수도 있는 와인의 느낌을 적절하고 기분 좋은 수준으로 조절해 주어 하라와 자바를 반씩 섞은 커피의 부드러운 버전(그리고 조금은 독특한 버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테말라와 시다모 내추럴을 반씩 섞었을 때는 상상 외로 쌉쌀하고 톡 쏘는 강렬한 커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브라질 세하도와 섞어 마시며 시다모 내추럴을 전량 소비할 생각이었지만, 카페뮤제오에서 회원 블렌드를 공모하였을 때 당선된 "양양 블렌드"가 시다모 35%, 안티구아 65%의 배합이라는 것을 떠올리고서 '그럼 시다모 내추럴과 과테말라 뉴 오리엔트도 한 번 섞어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도 결과는 의외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멕시코 치아파스를 과테말라 안티구아와 반씩 섞었을 때과테말라를 갈아 넣은 콜드 브루 커피와 두유를 섞었을 때도 느꼈지만, 과테말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맛과 향을 내 주는 때가 있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할 때 한 번 섞어 보는 것을 고려할 만한 커피인 것 같습니다.



 브라질 세하도를 조금 섞어 (시다모2 : 세하도1의 비율) 콜드 브루 커피로 만들어 마셔보았는데, 뜨거운 물을 많이 타서 연하게 희석하면 보리차와 같은 구수함과 아주 연해진 와인의 느낌, 그리고 부드럽고 달콤한 뒷맛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세하도를 평하며 "휴일 아침을 부드럽게 깨우는 커피, 늦은 저녁에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마시는 온화한 커피에 아주 잘 어울리는 원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시다모와 세하도를 섞어 추출한 콜드 브루 커피 역시 그와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르가체페는 건식을 파는 곳이 흔치 않고, 하라는 습식이 있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특정한 가공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매자가 건식/습식 여부를 특별히 표시하지 않았을 때는 이르가체페는 습식이고 하라는 건식일 것이라고 기대(혹은 짐작)하고 구입을 하게 마련입니다. 시다모처럼, 특정 지역의 커피가 건식과 습식으로 모두 출하되고 둘 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등급이 G2라면 습식이고 G4라면 건식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지만,) 등급조차 표시되지 않은 채 그냥 '시다모'라는 이름만으로 올라온 원두는 건식인지 습식인지 짐작하기 어렵고, 습식 시다모가 좀 더 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습식이겠지' 단정을 하고 주문을 했다가 건식을 배달받고 당황할 수 있다는 것이 시다모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조만간 시다모 습식도 마셔 보고 싶습니다. 건식을 조금 남겨 두었다가, 건식과 습식을 반씩 배합한 시다모도 마셔 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시다모는 특별히 맛이 좋다거나 특별히 향이 좋은 커피라기보다는, 특별히 흥미로운 커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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