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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커피 입문자를 위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두 리뷰를 올리면서 따로 태그를 붙이는 커피들이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COE 커피, 마이크로 로트가 그것입니다. 스페셜티와 COE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과정을 거쳐 품질이 증명된 커피고, 마이크로 로트는 생산자가 일종의 특상품으로 내놓은 커피입니다. 비교적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는 커피들이죠.


 스페셜티 커피, COE 커피, 마이크로 로트가 아닌 나머지들은 이 블로그에서 '일반 등급'의 커피로 취급됩니다. 이 블로그 밖에서 대강 '커머셜'로 통하는 커피들입니다. 커머셜이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일반 등급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커머셜을 대체할 용어로는 조금 부적절하다는 감도 있지만 이제 와서 바꾸기엔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평소에는 제가 '일반 등급'의 원두로 싸잡아 부르는 커머셜이지만 그 안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같은 경우 G1, G2, G3, G4…로 나뉩니다. 오늘은 커머셜의 등급에 대한 글을 써 볼까 합니다. 인터넷을 뒤적이면 각 등급에 대한 자료는 쏟아져 나오지만, 각 등급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보장하고, 무엇을 보장하지 않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글은 흔치 않습니다. 이 글은 등급에 대한 자료를 가공하고 정리하여 정보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글의 맨 아래에 요약본을 첨부하였습니다. 바쁜, 혹은 긴 글 읽기가 귀찮은 분들은 맨 아래에 있는 요약본을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재배 고도를 기준으로 한 등급 : SHB, SHG 외

 1.1. 부록 : EP가 뭐예요?


 중미의 여러 나라들은 재배 고도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깁니다. 과테말라 SHB, 코스타리카 SHB, 엘살바도르 SHG, 니카라과 SHG 하는 식으로요. 최고 등급인 SHB, SHG는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적어도 1,200m 이상입니다.


 재배 고도는 어느 정도 중요합니다. 재배 고도가 높으면 보통 일교차도 심한데, 일교차가 심하면 커피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밀도가 높아지고 맛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각주:1][각주:2] 하지만 재배 고도를 기준으로 한 등급은 별 의미가 없는데, 다들 최고 등급 조건을 충족할 만한 곳에서 커피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미에서 해발 1,200~1,400m 정도면 커피 재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교차는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괜찮은 농장의 입지 조건 하나가 충족되었고, 이제 시작이죠. SHB, SHG가 뜻하는 바는 '이제 시작'입니다.


 ※참고로 SHB는 Strictly Hard Bean, SHG는 Strictly High Grown의 약자입니다. 딱딱한(밀도가 높은) 콩, 고지대에서 자란 콩을 의미합니다.


 ※EP는 일반적으로 스크린사이즈 15이상, 생두 300g당 8디펙트 이하가 되도록 생두를 선별하는 작업을 거쳤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European Preparation의 약자로, 몇몇 유럽 생두 구매업자들이 좀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해 '유럽 업자들의 요구 조건에 맞춰 준비한 생두'가 세일즈 포인트가 되었고 이런 조건에 맞춘 생두에 EP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EP는 다른 대륙의 커피에도 붙을 때가 있지만, 중미 쪽에 붙는 경우가 많아 여기에서 설명하였습니다.


 EP는 그럭저럭 의미가 있는 옵션입니다. 스크린사이즈 15를 기준으로 한 번 털어주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디펙트들(부서진 콩, 기형/미성숙 콩, 쭈그러진 콩 등)은 대부분 걸러지고, 추가적인 핸드 소트를 하였으니 결점두의 수가 적거든요.


 하지만 그 기준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EP가 허용하는 300g당 8디펙트는 300g당 '8개의 결점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부서진 콩은 5개가 모여야 1디펙트로 계산됩니다. 그러니까 생두 300g 당 부서진 콩 40개가 섞여도 EP가 될 수 있는 것이죠(다른 종류의 결점두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 쪽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간당간당하게 EP를 받은 생두에는 생각보다 많은 결점두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 상 중미 원두는 EP가 붙었든 붙지 않았든 결점두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중미 원두에서 EP는 붙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옵션입니다. 오히려 EP보다는 믿을 만한 로스터리나 생두 판매업자가 좀 더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옵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로스터리나 생두 판매업자는 EP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으로 생두를 고르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품질을 관리하고 보장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2. 스크린사이즈를 기준으로 한 등급 : 수프리모, AA 외

 2.1. 부록 : Top, Plus, FAQ가 뭐예요?


 수프리모(17/18), 엑셀소(15/16)… : 콜롬비아에서 사용

 AAA(19 이상), AA(17/18), AB(15/16), PB(Peaberry)… : 케냐, 탄자니아 등에서 사용

 그 외 스크린사이즈 18 :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No.1,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팬시, 쿠바 크리스털마운틴


 스크린사이즈는 생두의 크기를 표시하는 방법입니다(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스크린사이즈가 17/18과 같은 식으로 표기되었다면 스크린사이즈 17짜리와 18짜리가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15/16은 15짜리와 16짜리가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스크린사이즈 17/18인 원두는 정말 굵직합니다. 굵직한 원두만 선별하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디펙트들(부서진 콩, 기형/미성숙 콩, 쭈그러진 콩 등)이 자동적으로 걸러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굵직해서 보기 좋죠. 장점은 여기까지입니다.


 애석하게도 스크린사이즈는 맛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중미 원두나 에티오피아 원두는 자잘한 것들이 많지만 좋은 맛을 내고, 스크린사이즈 17/18이 되지 않는 콜롬비아, 케냐 원두들 중에도 맛만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성숙 콩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나치게 작은 스크린사이즈'가 아닌 이상, 원두의 굵기와 맛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스크린사이즈를 기준으로 한 등급은 의미가 없습니다.[각주:3]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범위의 등급(수프리모~엑셀소, AAA~PB)에 들어와 있다면 높은 등급인지 낮은 등급인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나라에서 생산되는 마이크로 로트나, 농장 이름을 앞세운 원두라면 등급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고 표시된 스크린사이즈가 작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서는 Top, Plus, FAQ Plus, FAQ 등의 부가 정보를 표기하기도 합니다. Top, Plus, FAQ Plus, FAQ의 순서로 상등품→중등품을 의미합니다. FAQ는 Fair Average Quality의 약자로, 중등품을 의미합니다(상등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케냐 AA Top, 탄자니아 AAA Plus 하는 식으로 등급 뒤에 Top이나 Plus가 붙는다면 어느 정도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사이즈를 기준으로 한 등급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케냐 AA FAQ보다는 케냐 AB Top에 더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단, Top이나 Plus가 붙지 않고도 맛과 향이 좋은 케냐·탄자니아 원두는 존재합니다. 그래서 케냐 Top과 케냐 FAQ가 있다면 Top쪽이 FAQ보다 맛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지만, Top이 붙은 케냐와 Top이 붙지 않은 케냐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압니다. Top이나 Plus가 붙지 않았다고 무조건 품질이 낮은 건 아닙니다.




 3.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 : G1, NO.2 외

 3.1. 부록 : FC가 뭐예요?


 에티오피아 : G1, G2, G3, G4…

 인도네시아 : G1, G2…

 브라질 : NO.2, NO.2/3…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은 그중 의미가 있는 등급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결점두가 적은 쪽이 맛이 좋을 수밖에 없으니, 등급이 높아지면 그만큼 맛이 좋아질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최고 등급인 G1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점두를 골라내는 데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니 어중간한 생두는 G1이 되지 못합니다. G1을 만들었을 때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품질이 괜찮은 생두가 G1을 만드는 작업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1) 결점두 1개 = 1디펙트가 아니고 (즉, 생각보다 많은 결점두가 있을 수 있고)

 2) 이 등급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검은 콩(black bean), 껍질이 까지지 않은 체리(cherry), 큼직한 껍데기(big husk, thick skin) 정도의 심각한 놈들만 1개당 1디펙트로 계산됩니다. 부서진 콩, 기형/미성숙 콩은 5개, 벌레 먹은 콩은 5-10개가 모여야 1디펙트가 됩니다. 세부 기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되는 부분을 추려 보면 이러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원두를 살 때마다 핸드 소트를 했지만 검은 콩, 껍질이 까지지 않은 체리, 큼직한 껍데기 같은 디펙트는 거의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골라내는 결점두의 대부분은 몇 개 모여야 1디펙트가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생두나 원두를 구입한 소비자가 실제로 골라내는 결점두의 개수는 허용 디펙트의 수의 몇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허용 디펙트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생두가 걸려들었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테고요.


  a) 에티오피아


 테라로사 라이브러리를 적극적으로 참고하면, 에티오피아 습식은 G1, G2만 유통되고 건식은 G1, G3, G4, G5가 유통됩니다. (건식 G2는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샀던 짐마 G2 내추럴은 어찌 된 물건이었을까요?)


 습식 G1은 300g당 1디펙트 미만, 습식 G2는 300g당 1-25디펙트입니다. G2의 경우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똑같은 G2여도 그 품질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고 합니다. 부서진 콩 125개가 25디펙트이니, 300g에 부서진 콩이 이만큼 섞여도 턱걸이 G2입니다. 징글징글하죠. 반면 최상급 G2는 1디펙트, 부서진 콩 5개입니다. 이 정도면 턱걸이 G2와는 천지차이고, 한 등급 위의 G1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입니다.


 건식 G4는 300g당 26-45디펙트입니다. G3은 26디펙트 미만, G1은 1디펙트 미만입니다. 최상급 G4는 G3에 준하며, 최상급 G3는 G1에 준합니다. 반면 턱걸이 G3는 턱걸이 습식 G2 정도의 수준이고, 턱걸이 G4는 그보다 훨씬 많은 디펙트를 허용합니다. 테라로사 식으로 말하자면 똑같은 건식 G3도 그 품질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으며, G4는 일단 지옥에서 시작하는 셈입니다.


 에티오피아 G1은 (습식·건식을 불문하고) 상당히 의미 있는 등급이라고 생각합니다.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이므로 어느 정도 품질이 보장되며, 300g당 1디펙트 미만으로 기준이 엄격하고, 그 때문에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은(조금은 엉터리 같은) G1의 상태도 그럭저럭 괜찮기 때문입니다. 커피 애호가의 사랑을 많이 받는 나라들—케냐, 탄자니아, 콜롬비아, 중미 여러 나라들—원두의 최상위 등급(AA, 수프리모, SHB, SHG)이 별 의미가 없거나 변별력이 없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의 G1이 더 돋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b)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G1, G2 등급이 주로 유통됩니다. 그 이하 등급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구경하기는 힘들지요. G1은 단위 중량당 11디펙트 이하, G2는 25디펙트 이하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단위 중량은 300g이라는 설명과, 350g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300g쪽이 좀 더 우세해 보입니다)


 디펙트를 계산하는 법은 단체나 기업,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데, 인도네시아의 디펙트 계산법이 가장 관대합니다. 실버스킨이 남은 콩, 작은 파치먼트 조각, 얼룩이 있는(spotted) 콩, 구멍이 하나 있는 콩은 각각 10개당 1디펙트, 구멍이 하나보다 많이 난 콩, 작은 겉껍질(husk) 조각, 중간 크기의 파치먼트 조각, 부서진 콩, 미성숙 콩은 각각 5개당 1디펙트입니다. 여기에 G1이 11디펙트 이하라는, 상당히 관대한 기준[각주:4]과 함께 복리의 마법(…)을 부리면 이론상 G1에서도 단위 중량당 결점두 100개 이상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포스팅을 하면서 몇 번 결점두가 적을 것이란 기대는 포기하는 게 속 편한 나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G1이 이 정도인데 G2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c) 브라질


 브라질의 경우, 유통되는 원두에 등급이 명시되는 경우는 NO.2, NY.2가 대부분이고, 그 밑으로는 등급을 잘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FC(Fine Cup)이라는 말이 선택적으로 붙기도 합니다.


 NO.2는 C.O.B.(Classificação Oficial Brasileria) 방식의 최고 등급이고, NY2는 New York(Coffee & Sugar Exchange Inc) 방식의 최고 등급입니다. NO.2는 단위 중량당 4디펙트, NY2는 단위 중량당 6디펙트까지 허용하며, 세부적인 기준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에티오피아나 커머셜과 대체로 비슷합니다.


 ※FC는 Fine Cup의 약자로, Good Cup보다 우수한 품질임을 의미합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Good Cup은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따로 모아 가공한 커피라는 설이 있지만 낭설로 짐작됩니다(영어판에서 이와 유사한 설명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FC가 GC보다 비쌉니다.


 NO.2, NY2는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이고 FC, GC는 품질(아마도 커핑 결과)을 기준으로 한 등급이며 17/18은 스크린사이즈(17 또는 18)를 기준으로 한 등급입니다. 그런데 이 셋이 세트처럼 붙어다니거나 혼용·혼동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NO.2, NY2가 17/18을 내포하거나('NO.2, NY2는 알이 굵다'), FC가 NO.2 또는/그리고 NY2를 내포하는('FC는 결점두가 적다')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NO.2나 NY2 없이 파인컵(FC)만 붙은 브라질 세하도에서 결점두가 쏟아져나온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파인컵은 결점두가 적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가 포스팅을 하면서 '인도네시아는 브라질과 함께 결점두는 포기하는 게 속 편한 나라'라고 적은 적이 있는데, 그 브라질은 특히 "결점두를 기준으로 한 등급(NO.2, NY2 등)이 붙지 않은 브라질 원두"를 의미합니다.


 브라질 원두는 채프가 잘 타는 편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값싼 세하도 파인컵, 그럭저럭 하이 커머셜인 모레니냐 포르모자, 스페셜티를 자처하는 산토스 블루 다이아몬드, 심지어 COE인 2013 #19 시치우 크루제이루에서도 채프가 탄 원두가 꽤 많이 나왔습니다. 채프가 타는 건 로스팅 중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생두 단계에서는 적발(?)할 방법이 없으니 (생두의 품질을 기준으로 하게 마련인) 등급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NO.2, NY2는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으로서 그중 믿을 만하고, FC는 붙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리고 등급과 상관없이 브라질 원두는 채프가 잘 타니, 뭘 사더라도 타버린 채프 정도는 각오하시는 게(그리고 포기하시는 게) 속 편합니다. 타버린 채프의 영혼 없는 쓴맛은 과소추출을 하면 줄어들고(이 블로그의 커피 추출법 중에서는 파보일드 커피가 이에 해당합니다), 커피의 온도가 적당히 식으면 줄어들어서 커피의 맛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요약본/마무리


 SHB, SHG는 재배 고도를 기준으로 매겨지는 등급입니다. 나라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적어도 1,200m 이상입니다. 재배 고도가 높으면 일교차가 심해지고, 심한 일교차는 커피의 맛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등급입니다. 이런 등급을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거의 대부분 최고 등급을 만족하는 고도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때문에 변별력은 거의 없습니다.


 EP는 European Preparation의 약자로, 알이 좀 굵고(스크린사이즈 15이상) 결점두가 적음(300g당 8디펙트 이하)을 의미합니다. 그럭저럭 의미는 있지만, EP가 안 붙고도 맛만 좋은 중미 커피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콜롬비아 수프리모, 케냐 AA 등은 원두 알의 굵기를 기준으로 매긴 등급입니다. 최고 등급은 보통 스크린사이즈 18 또는 17/18(17 또는 18)입니다. 애석하게도 스크린사이즈는 맛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굵기를 기준으로 한 등급은 아예 의미가 없습니다. 당연히 변별력도 없습니다.


 케냐와 탄자니아 원두에 붙는 부가 정보는 Top, Plus, FAQ Plus, FAQ의 순서로 상등품→중등품을 의미합니다. Top이나 Plus가 붙는다면 어느 정도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단, Top이나 Plus가 붙지 않았다고 반드시 품질이 낮은 건 아닙니다)


 에티오피아 G2, 인도네시아 G1, 브라질 산토스 NO.2 등은 디펙트를 기준으로 한 등급입니다. 디펙트가 적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습니다. 디펙트는 커피 맛을 망치는 주범이니, 상당히 의미 있는 등급입니다.


 결점두 1개 = 1디펙트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개의 결점두가 모여 1디펙트를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결점두가 나올 수 있습니다. 디펙트 계산 방법은 나라마다, 단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기준이 엄격한 에티오피아 G1에는 상당히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습식 G2나 건식 G3는 그 범위가 매우 넓어 똑같은 등급이어도 그 품질은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G1은 허용 디펙트 수치도 크고 디펙트 계산 방법도 관대해서 별로 믿을 게 못 됩니다. 브라질 NO.2, NY2에는 그럭저럭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 원두에 붙는 FC는 Fine Cup의 약자로, GC(Good Cup)보다 우수한 품질임을 의미합니다. 딱 거기까지고, 케냐나 탄자니아에 붙는 Top급 품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복잡한 등급 체계는 커피 공부를 처음 시작한 사람을 질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등급 체계는 대부분 세 가지(재배 고도, 스크린사이즈, 디펙트) 중 하나를 기준으로 잡고 있으며 때에 따라 부가 정보가 붙는 정도입니다. 시장에서 거의 유통되지 않는 등급이 꽤 많으므로 이들을 지우고, 높은 품질의 원두를 선택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되는 등급 체계부터 알아나가면 분량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러다 보면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기억하게 됩니다. 너무 겁 먹지 마시길!




 각주


  1. 참고로 커피의 세계에서는 저지대의 커피보다는 고지대의 것이 고품질로 취급된다. 과테말라의 일반 유통 커피 중에서는 SHB(strictly hard bean)가 최상급으로 해발고도는 1,350m 이상이다. 다른 중미 각국에서도 대부분 1,200m의 고지대의 것이 고품질로 취급받고 높은 값으로 거래된다. 급을 나누는 기준은 거의 '고도 차'뿐이다. 여기에 욕심을 부리면 고지대에다 일교차가 심한 곳이 좋다. 열매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함으로써 진하고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다. 이는 와인과 포도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다구치 마모루 (2013) <스페셜티 커피대전> 광문각. pp.34-35(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 일반적으로 지대가 높으면 일교차가 심하다. 햇볕이 뜨거운 낮에는 생두가 팽창하고, 밤이 되어 기온이 급강하하면 수축한다. 이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생두의 밀도가 높아지고 단단해진다. 고밀도의 생두는 저밀도에 비해 추출했을 때 맛과 향이 훨씬 풍부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전광수 외 (2008) <기초 커피 바리스타> 형설. pp.50-52(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재배 고도를 기준으로 한 등급이 변별력이 없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다들 SHB/SHG를 달고 나오기 때문에 변별력이 없기는 하지만, 낮은 등급—특히, 해발 900m 이하의 낮은 지대에서 재배되었음을 의미하는 등급을 달고 나온 중미 원두는 걸러낼 필요가 있습니다(하와이 코나, 쿠바 크리스털마운틴 등은 별론으로 하겠습니다). 품질이 낮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크린사이즈는 품질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의미 자체가 없습니다. [본문으로]
  4. 에티오피아 최고 등급인 G1은 1디펙트 미만, 브라질 최고 등급인 NO.2는 4디펙트 이하, NY2는 6디펙트 이하입니다. NO.2와 NY2의 차이는 브라질 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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