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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브라질 COE 2015 3위 Bom Pastor (Brazil COE 2015 #3 Bom Pastor) 200g

 구입일 : 2016. 1. 18.

 구입처 : 커피 리브레


 저의 일흔두 번째 커피는 브라질 COE 2015 3위 Bom Pastor였습니다.


 이 원두의 COE Score는 93.00점입니다.



 Bom Pastor를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으면 '봉 파스토르'가 됩니다. (커피 리브레는 '봄 파스톨'이라는 표기를 사용하였으나, 포르투갈어에서는 단어 끝에 오는 m은 ㅇ받침으로 적고 단어 끝의 r은 ㄹ받침이 아닌 '르'로 적게 되어 있으므로, '봉 파스토르'로 표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COE 원두를 구입할 생각으로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매우 높은 COE Score가 인상적인 이 원두를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93점을 받은 COE는 돈이 있어도 쉽게 못 사는 커피입니다. 일단 그 점수를 받은 COE 커피가 나와야 하고, 우리 나라 회사가 경매를 따 내야 하고(원두 한 봉지 사러 비행기 타고 해외에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재고가 있을 때를 노려 주문을 넣어야 살 수 있는 커피죠. 그래서 일단 구입했습니다. 덮어놓고 지르기를 잘 했습니다. 뭘 좀 확인하려고 커피 리브레 홈페이지에 1월 21일에 다시 접속했더니 그새 다 팔렸는지 판매중인 제품 목록에서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참고 : 이 블로그의 별점과 그래프>


 비교적 가벼운 바디, 우유(촉감), 다크초콜릿(촉감/향), 레몬 같은 산미(맛), 감귤·산수유·패션프루트(맛), 포도(맛), 말린 포도·망고(맛/향), 리치(맛/향), 정향(향), 후추(향), 시나몬·블랙커런트(향), 아몬드·헤이즐넛(향), 들깨(향), 볶은 보리(향), 티로즈(향), 와인의 느낌


 문학적인 비유는 리뷰도 문학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비유가 정곡을 찌르면 천 마디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통찰을 전할 수 있지만, 비유가 뜬구름을 잡으면 리뷰는 공허한 말의 잔치가 되지요. 정보는 사라지고 뜻은 모호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비유를 자제하는 편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비유가 언제나 딱 들어맞는 것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유가 쏟아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내린 봉 파스토르를 맛보며 휘갈겨 적은 메모를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

내추럴의 구수함을 뚫고 올라오는 감귤계의 산미—두 층위의 동시적·개별적 존재감. 감상 포인트는 내추럴 성부와 워시드 성부의 대립, 번갈아 보여주는 우위, 성부 교차, 긴장과 해결 같은 음악적 움직임.

 (…….)


 건식과 습식의 미덕을 두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미덕이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이번 봉 파스토르는 저번 주에 리뷰한 엘 콘로달과 비슷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엘 콘로달이 습식의 기반 위에 건식으로 포인트를 주었다면 봉 파스토르는 건식의 기반 위에 습식으로 포인트를 주었다는 점 정도입니다. 이렇게 쓴 대로라면 둘은 질적으로 동등한 원두여야 정상이고, 나머지는 취향 문제여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봉 파스토르는 훨씬 높은 점수로 COE에서 3위를 했고, 습식의 깔끔함을 좋아하는 저에게도 엘 콘로달보다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객관적(이려고 애쓰는) 언어와 건조한 표현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는 리뷰어를… 환장하게 만듭니다. 플라시보나 기분 탓이 아닌데, 이유는 설명할 수 없고, 내버려 두자니 찝찝하고, 잊어버리자니 자꾸 생각이 나고, 숨기자니 비겁해 보이고, 그렇다고 리뷰를 안 쓸 수는 없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으니까요.


 저는 봉 파스토르에서 많은 아름다움을 느꼈고, 상당한 만족감을 얻었습니다. 결점으로 볼 만한 특성(노트)이 사실상 없고, 균형감을 해치는 약점도 거의 없습니다. 쓴맛이 좀 적고 전반적으로 인상이 가볍기는 하지만,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하거나 커피를 아이스(iced) 온도로 맞추면 적당한 무게감이 생기니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닙니다.


 봉 파스토르는 추출법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커피입니다. 터키시 커피로 추출하면 가벼운 바디, 가벼운 인상의 상큼한 커피에 약간의 에스닉함—제가 노트에 '정향'으로 표기하는, 베트남쌀국수에 많이 들어갈 것 같은 향신료의 느낌이 지배적인, 건식으로 가공한 커피 특유의 구수한 느낌이 무게를 잡아 주는 느낌이 듭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하면 의외의 묵직함과 강한 산미, 말린 과일과 향신료와 허브의 복합적인 향미가 감지되는, 역동적인 커피가 됩니다.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하면 무겁게 출발해 식으면서 가벼워지는 변화가 인상적인, 적당한 무게감과 균형감이 있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해 식히면 적당한 쌉쌀함과 묵직함, 와인의 느낌, 바디-산미-쌉쌀함-감칠맛이 이루는 탁월한 균형감, 달달한 뒷맛이 인상적인 아이스 커피가 됩니다. 콜드 브루 커피로 추출하면 견과류의 고소함과 향신료의 구수함, 와인의 느낌, 깔끔하고 구수한 뒷맛이 마음에 드는 커피가 되고요.


 개인적으로는 뜨겁게 즐길 때는 티포트 브루 커피(또는 이와 유사한 프렌치프레스)로 추출했을 때, 차갑게 즐길 때는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해 식혔을 때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다양한 추출법으로 봉 파스토르를 즐겨 보실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ㅋㅋㅋㅋㅋ) 이 원두는 빛의 속도로 매진되었습니다. 요즘 커피 리브레에 다양한 COE가 올라오고 있으니, 아쉬운 대로 다른 제품들이라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원두를 배송받고 핸드 소트를 할 때, 결점두가 매우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원두 상태에서도 와인 같은 냄새가 풍겨나와서 대단히 인상적이었고요(추출한 결과물에서 와인의 느낌이 나는 커피는, 원두 상태에는 약간 비릿한 냄새나 짭짤한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원두 상태에서 와인 같은 냄새를 풍기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들기름 발라 구운 김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게 리뷰 후반부로 와 버렸네요. 하하하(…)


 인상적인 커피였습니다.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다양한 맛과 향을 감상하며 아주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득점 COE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또 고득점 COE에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는지를 조금은 감 잡을 수 있어 리뷰어로서도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굳이 봉 파스토르가 아니더라도, 90점을 넘긴 고득점 COE는 커피 애호가로서 (또는 리뷰어로서) 한두 번쯤은 꼭 마셔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조화와 대립, 긴장과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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